그냥 쓰는 글 2018.06.28(산다는 것)
내가 상병 때 일이었다
난 군번이 잘 풀려서 생각보다 빨리 분대장을 달았다
나보다 4개월 빨리 온 동기가 있었지만 전 분대장과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내가 달게 되었다
그렇게 분대장 견장을 달고 다니며 나도 짬 좀 먹었구나 를 느끼며 살던 시절이었다
어느 날 근무를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얼마전에 들어온 신병이 내 옆에 앉았다
그러곤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
사지방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
사지방은 생활관마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내가 관여할 부분이 없었다
그래서 어떻게 말할까 생각 중 이었는데 신병이
여자친구에게 차인거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
난 바로 사지방으로 갔다
사지방의 자리를 잡아주고 신병이 여자친구와 페매를 하는 것을 좀 보다가 생활관으로 왔다
그러고 나서 난 쉬고 있는데 신병이 내 생활관으로 왔다
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
딱 봐도 차인 얼굴이었고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
난 그에게 자판기 커피를 사주면서 위로를 해줬다
그는 울기 시작했다
수십 개월을 만났는데 한달 못 봤다고 이렇게 차인 것이 억울했나 보다
난 내가 해줄 수 있는 좋은 말과 현실적인 말을 적절히 섞어서 이야기 해줬다
그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내가 아니었으면 위험한 선택을 했을 거라고 했다
위험한 선택?
군대에서 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은 보통 두가지이다
자살 & 탈영
들어 온 지 한달도 안된 신병이 탈영 할 생각은 못했을 거 같고 아마 자살을 생각했나 보다
난 화가 났다
죽는다는 말을 너무 쉽게 꺼낸 것이 짜증났다
죽는게 쉬운 일인가?
누구는 거지 같은 군대에서 살겠다고 삽질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여자에게 차였다고 죽겠다는 말을 하는 그에게 정 내미가 떨어졌다
난 병신이어서 군대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인가?
누구는 죽을 줄 몰라서 살겠다고 악착같이 일하는 것인가?
죽음을 쉽게 생각하는 그의 태도가 열심히 살고 있는 나의 태도를 비웃는 것 같았다
그래서 화가 났지만 화내지 않았다
화내면 죽을 거 같아서..
죽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
모두가 이를 명심했으면 좋겠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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